기본정보
국명 : 칠레공화국(República de Chile)
수도 : 산티아고(Santiago, 824만명)
인구 : 1968만명 (2021)
면적 : 75만 6102㎢ (한반도의 3.5배)
언어 : 스페인어
종교 : 가톨릭(54%), 개신교(14%), 무교(25%)
역사
칠레의 역사는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도착하기 전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에 살았던 토착민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541년, 스페인인들은 산티아고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 지역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칠레는 181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베르나르도 오히긴스와 그의 스승인 아르헨티나 장군 호세 데 산 마르틴이 이끄는 길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에 칠레는 181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오히긴스는 칠레의 첫 국가 원수가 되었고, 정치적 불안정의 시기가 이어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칠레는 광물, 특히 구리의 수출에 힘입어 상당한 경제 성장을 겪었다. 이 시기에는 노동운동의 부상과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의 출현을 포함한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도 있었다.
1970년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정부는 대대적인 사회 및 경제 개혁을 시행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재계와 군부의 저항에 부딪혔고,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사 쿠데타가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켰다.
피노체트 정권은 고문, 실종, 정적 처형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특징지어졌다. 피노체트는 1990년까지 권력을 유지하다가 국민투표로 물러났다.
민주주의가 돌아온 이후 칠레는 시민권의 확대와 시장지향적 경제정책의 시행 등 중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칠레는 또한 국제 정치,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시기를 누렸다.
경제
- GDP : 3167억$ (2021)
- 1인당GDP : 1만 6503$ (2021)
- 경제성장률 : 4.5% (2022년 2분기)
- 교역 : 2021
- 수출액 : 947억$
- 수입액 : 918억$
- 물가상승률 : 8.5% (2022.7월)
- 실업률 : 7.2% (2021년 4분기)
- 외환보유고 : 518억$
정치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임기 4년, 연임금지)
- 주요인사
- 대통령 : Gabriel Boric Font(가브리엘 보리치 폰트, ’22.3.11. 취임)
- 외교장관 : Antonia Urrejola Noguera(안토니아 우레홀라 노게라, ’22.3.11. 취임)
- 의회구성 : 양원제
- 상원 : 50명(임기 8년)
- 하원 : 155명(임기 4년)
산티아고
남위 18도에서 56도까지 뻗어 내려간 칠레의 남북 길이는 무려 4329 킬로미터. 반면 태평양을 향해 열린 서쪽과 안데스 산맥의 발치에 드러누운 동쪽의 폭은 175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늘씬한 이 나라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까지를 품고 있다. 다양한 자연 환경을 지닌 칠레의 대지는 구리를 비롯한 광물자원이 풍부했고, 이는 결국 칠레의 역사에 드리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Rain over Santiago".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제목의 노래와 영화를 기억하는지. 최근 도보여행으로 인기를 끄는 스페인의 산티아고가 아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40년 전,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1973년 9월 11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칠레 국영 라디오에서는 “지금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 엉터리 일기예보를 반복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멘트는 쿠데타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호였다. 칠레 정부의 국유화 조치로 구리광산을 빼앗긴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는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선거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던 아옌데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다가 “칠레 만세! 민중 만세”를 외치며 삶을 마감했다. 그 후 17년간 이어진 피노체트의 군사 독재 기간 동안 칠레에서는 최소 3천명이 납치, 살해됐고, 2만 8천명의 고문피해자가 생겨났다.
그 시절 이 나라에 드리운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는 칠레가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먼 별 이나 칠레의 밤에 슬프고도 우습게 드러나 있다. 피노체트 치하에서 칠레에서 글을 쓰거나 노래를 하는 일은 감옥행이나 사형, 최소한 망명의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가장 비극적인 전설로 남은 이는 빅토르 하라다.“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는 슬로건으로 ‘누에바 칸시온(새 노래)’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가수 빅토르 하라. 칠레가 사랑했던 그는 5천여 군중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 개머리판으로 손목이 으스러지고 총살당했다. 이제는 ‘빅토르 하라 스테디움’이라고 이름 붙여진 운동장에서 그는 마지막 노래를 남겼다.
비극의 현대사를 비척거리며 걸어온 칠레는 2010년 가을, 그 이름을 세계에 다시 새겼다. 지하 700미터 갱도에 갇힌 33인의 광부들이 쓴 휴먼드라마로. 암흑 공간에서의 69일을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견뎠다는 광부들. 칠레는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문학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중남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스무 살에 쓴 시집으로 세계의 청춘을 사로잡은 파블로 네루다,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였던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 환경문제에 대한 고발을 멈추지 않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등. 칠레에서 시와 노래는 늘 정치적이었다.
저항의 역사는 오늘날에 와서도 멈추지 않고 칠레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반체제 운동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란 스물세 살 여학생이 다시 한 번 칠레와 세계를 뒤흔들었으니. 국립 칠레대학 학생회장 출신 카밀라 바예호(24세). 그녀는 교육과정 개선을 요구하는 수십 차례의 대규모 시위를 이끌며 21세기의 체게바라로 떠올랐다. 산티아고 광장에서 진압경찰이 발포한 최루탄 깡통을 모아놓고 “여기에 들어간 돈으로 교육현장 개선에 힘쓰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보도된 후 그녀의 이름은 전 세계로 퍼졌다. 빼어난 외모도 인기에 한 몫을 했는지 그녀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독자가 뽑은 2012년 ‘올해의 인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시와 노래를 무기로 들었던 이들답게 산티아고는 음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포크 뮤직을 연주하는 라이브 카페가 늘어선 거리에는 비올레타 파라나 빅토르 하라의 노래가 여전히 살아있다.
무명가수가 부르는 ‘그라시아스아라비다(생에 감사를)’나 체를 기리는 노래 ‘아스타시엠프레’ 같은 노래를 듣노라면 절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바로 옆 카페에서는 락앤블루스 공연이 한창이다.
작업복을 입은 채 춤을 추는 할아버지. 리듬에 몸을 맡긴 채 키스하는 연인들. 피스코나 와인 잔을 들고 서빙을 다니는 사이 몸을 흔들어대는 웨이터들. 칠레의 자연을 찬미한 노래가 끝난 후 리드 보컬이 외친다. “우리는 거리로 나가 싸워야만 합니다.” “밴드가 정치적이네요”라는 이방인의 평에 “정치적이면서도 시적이에요”라고 답하는 사람들.
이 도시에서는 여전히 시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가장 강력한 연대의 도구가 된다. 어깨를 걸고 노래 몇 곡을 함께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아미고(친구)”라고 부르며 손가락의 반지를 여행자의 손에 끼워주는 다정한 사람들. 산티아고의 라이브 클럽을 방문하면 어느새 처음 만난 이들과 어깨를 걸고 “비바 코레아” “비바 칠레”를 외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남단의 작은 나라처럼 격정의 현대사를 거친 칠레의 산티아고는 황금을 찾아 남미로 온 스페인인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1541년에 건설됐다.
산티아고는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도시는 아니다. 점점 커지는 칠레의 정치 경제적 위상을 보여주듯 빠르게 팽창하는 도시다. 대성당과 국회의사당, 모네타 궁전과 박물관들이 몰린 구시가의 중심지 아르마스 광장은 다정한 ‘칠레노’들을 만나기 좋은 곳이다. 1년에 300일 이상 해가 뜬다는 도시의 뜨거운 햇살 아래 뛰어 노는 아이들, 일 없이 소요하는 청년들, 구걸하는 걸인들, 체스를 두는 노인들, 말을 타고 순찰하는 경찰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동편 하늘가에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이 걸려 있다. 다만, 악명 높은 이 도시의 스모그가 걷혔을 때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옛 건축물들에 둘러싸인 구시가지가 서민과 관광객의 터전이라면 상업지구 프로비덴시아나 신시가지 라스꼰데스의 현대적 화려함은 산티아고의 또 다른 얼굴이다.
번잡한 도시 산티아고에서 보내는 시간이 슬슬 힘겨워진다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항구도시 발파라이소, 칠레 와인의 우수함을 시음할 수 있는 와이너리들, 네루다의 생가가 있는 이슬라네그라, 세련된 해변 도시 비냐델마르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기다리고 있다.
-출처 칠레 산티아고 -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 (열정의 대륙 남미 기행, 김남희), 네이버 지식백과사